알고 꾸는 꿈 | 꿈에 대한 기독교 전통이 왜 바뀌어지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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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5:25 조회4,820회 댓글0건본문
박해를 받던 초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을 받고 난 후 동서교회의 많은 교부들이 꿈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했으며, 꿈은 하나님이 인간들과 교통하시기 위한 매개체라는 생각이 교회에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꿈에 대한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꿈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틀림없이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꿈이 기독교에서 사라지고 말았듯이 일반사회에서도 꿈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꿈이 인생살이에 하나의 중요한 지침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꿈이란 아녀자들이 뒷켠에서 소곤거리는 하나의 뉴앙스적인 것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과학의 발달과 인지의 발달이 꿈을 멀리하게 만든 원인일까?
현재 세계사, 하면 서양 역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동양 역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동양에는 서양에 비해서 더 찬란한 역사가 있다. 서양 역사가 세계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결과론적인 이유이다. 즉 물질의 힘이 강해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서양이고 동양은 현재까지도 서양을 따라가기에 온갖 힘을 다 하고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서양 문명의 근본적인 축은 무엇인가? 다른 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가지 면으로 본다면, 서양 문명이 플라톤의 철학을 뒤로 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앞전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덕분으로 서양은 물질문명의 극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가 끝날 때 쯤하여 신학도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게된다. 서양 문명은 완전하게 물질 문명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물질문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꿈이 설자리는 없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알아보기로 한다.
교부들이 기독교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난 후, 서방 교회에서는 수세기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암흑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초대 교부들이 만들어 놓은 기독교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게 된다. 물론 꿈에 대해서도 서방 교회에서는 이렇다 할 기록이 안 보이는 반면에 동방 교회에서는 희랍을 중심으로 꿈도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또 그 전통이 이어져 오게된다.
14세기 이후 컨스탄틴노플이 함락된 후 많은 동방 문화가 서방 쪽으로 들여오게 된다. 문예부흥 때에는 한동안 꿈에 대하여 관심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문예부흥은 원래 희랍문화를 숭상함을 그 원조로 삼은 운동이었다. 따라서 문예부흥 운동 때 희랍의 전통으로 인식된 꿈도 일시적인 중흥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 당시를 전후하여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이 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드러나게 한다. 이때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솔로몬 알 몰리(Solomon Alveoli)이다.
동시에 문예부흥 때 희랍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적인 세계관을 도입하게 된다. 중세 이전에 풍미했던 꿈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게 된다.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물질적인 세계관의 소유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꿈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노력은 있었다. 예수회 소속인 베네딕트 페레리우스(Benedict Pererius), 가스퍼 퓨서(Gasper Peucer) 등 여러 사람들이 있었으나 꿈을 배격하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는 하나의 작은 목소리로밖에는 취급되지 않게 되었다.
다음은 꿈에 대한 반대입장을 세운 사람들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 그는 기독교 철학자/신학자로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다. 아랍 문명의 근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었듯이 아퀴나스의 신학은 성경적인 전통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주의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쓴 책인 최 우수 신학(Summa Theologica)이란 기독교 철학과 신학을 대표할 만큼 대작이다.
물론 성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기본이 되었다. 아퀴나스는 성경에 나오는 꿈에 대하여 이쪽저쪽 어느 쪽에도 무게를 두지 않았다. 즉 꿈이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입장도 취하지 않고 또한 꿈은 순전히 인간의 육체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꿈에 대하여 더 연구해 보아야 한다는 여운도 두지 않았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꿈에 대하여 특정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취하지 않은 바에 대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꿈을 경시하게 되는 풍조를 심어주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14세기 이후로 현재까지 서방 기독교로부터는 꿈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퀴나스의 꿈에 대한 입장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아퀴나스는 구약에 나오는 꿈에 대하여 그의 저서인 최 우수 신학에서 꿈은 저급의 계시를 전해줄 뿐이다.라고 언급한다.
그가 꿈에 대하여 낮은 평가를 내리는 실질적인 이유는 아퀴나스의 신학 속에는 꿈이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구조적인 거부감 때문이라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퀴나스의 꿈에 대한 태도는, 꿈은 하나님으로부터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꿈에 대하여 위험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마귀도 꿈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아퀴나스는 민수기 12장 6절(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 민 12 : 6)에 나오는 구절에 대하여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 구절은 마귀가 장난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민수기 12장 6절은 꿈과 이상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풀기 힘든 구절이다. 성경을 선별적으로 믿어서는 안되지만 이 구절에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만다. 입장이 곤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하여 아퀴나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퀴나스는 꿈에 관해서는 구약성경만 갖고 곤란을 받은 것이 아니다. 신약에 들어 와서도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특히 신약 중에서도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꿈, 이상, 황홀경, 천사, 마귀, 치유사역, 방언 및 각종 기적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의 신학적인 체제로 인해 아퀴나스는 신약에 나오는 꿈들만 부인한 것이 아니라 앞에 열거한 모든 면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부인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된 것이다.
4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사역의 19%가 치유사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고 아퀴나스의 신학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된 것이다.
아퀴나스는 그의 선배인 어거스틴에 대하여 꿈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공격한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성이 현차원의 현실을 벗어나서 다른 차원의 현실과 연결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결론을 내리기를 꿈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매개체라고 하는 꿈이지만 인간은 영적인 세계를 직접 알 수 없는 한계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꿈은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
이와 같은 아퀴나스의 결론은 다음 세대는 물론 현대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이다. 아퀴나스의 신학이 근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신학 중에서 꿈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으로 꿈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연 융의 무의식과 꿈에 대한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 기독교는, 이렇게 멀리 아퀴나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신학은 카톨릭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개신교도 아퀴나스 신학의 영향을 똑 같이 받고있다.
융은 꿈이나 이상을 통해서 비 실체적인 현실과 연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물론 융의 꿈 이론에서도 모든 꿈이 다 비 실체적인 현실과 연결이 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총체적 무의식 중에서는 비 실체적인 현실과 연결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융의 심리학과 꿈 참조)
아퀴나스는 계시란 다음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첫째, 마음에 의해서, 둘째, 감각적인 활동에 의해서, 셋째,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넷째, 다른 곳으로부터 얻는 지식으로부터 계시를 얻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아퀴나스가 말하는 계시는 빛에 의해서 가동될 수 있으며 또한 영감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얻는 지식과 계시가 다른 점은 하나님의 빛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를 밟았다는 증거가 나온다. 아퀴나스는 꿈이란 인간의 육체에서 나오는 일종의 김 같은 것이다. 또한 꿈이 저급의 경험일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은 잠자고 있을 때에는 이성도 없고 정상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가 꿈에 대하여 평가절하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이 두 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었던 사람들이다. 자유의지를 갖고있는 인간에게 만일 꿈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이런 걱정을 한 위의 두 사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완전한 파악을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말년은 상당히 쓸쓸해진다. 그가 주장한 신학과는 상반되게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하게 된다. 그는 절필하고 대화마저도 꺼리게 된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마지막 순간이 오기만 기다린다고 말한다.
아퀴나스는 치유사역도 부인했다. 나중에 아퀴나스의 신학은 카톨릭은 물론 개신교에서도 그대로 영입해서 오늘날까지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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