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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꾸는 꿈 | 신화와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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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5:13 조회4,3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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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블은 다음과 같이 신화를 정의했다.

첫째, 신화는 존재의 신성화이다. 신화가 없는 존재는 사라지고 신화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의 존재가 신성화되면서 한 단계 높아지는 것이다.

둘째, 신화는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알려준다. 우주가 어떻게 생기게 됐으며,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임을 알려준다.

셋째, 신화는 개인들이 어느 단체에 속하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려준다.

넷째, 신화는 각 개인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면서 내적인 연결을 도모해 준다. 나는 누구이며, 내 인생의 뜻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오늘날에는 종교가 옛날의 신화의 역할을 대치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종교는 인간들의 신성화를 도모해준다. 종교는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하여 알려준다. 종교는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알려주어 소속감을 주게된다. 그리고 종교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면서 내적으로 연결을 시켜주며 인생의 뜻을 찾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있다.

융은 신화란 무의식의 발로라고 말했다. 이어서 설명하기를, 신화를 말하면서 인간들은 제자리에 돌아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과정을 밟게되고, 무의식과 의식 사이가 연결된다고 말했다.
신화는 무의식 중에서도 집단적 무의식에 들어있는 원형이 표현된 것이다. 전세계에 널려있는 모든 신화들은 모두 공통된 내용을 갖고있다. 세계의 신화가 공통되어 있다는 뜻은 신화의 구성요소인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들이 공통되어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들이 공통되어 있다는 뜻은 모든 인류는 공통된 경험을 갖고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예를 든다면, 세계 어디에 있는 인종들이라도 특수한 환경에 처하게 될 때 모두 같은 반응을 보여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사람들은 인종의 벽을 넘어서 놀랐을 때의 얼굴표정이나 몸짓이 모두 같게 나타나게 된다. 

인류의 조상은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는 가설에 대한 정확한 답변인 셈이다.

현대인들은 신화하면 가짜 이야기라고 여긴다. 하나의 심심풀이 정도라고만 여기는 것이다. 온갖 장난감들에 도취되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갈 뿐 아니라 신화까지도 잃어가는 현대인인 것이다. 그러나 신화에는 변치 않는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모든 인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신화에는 인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디서 왔고 또한 당시의 인류들은 어떤 식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갖고있었는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현대인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인 영화 화면이나 테레비 화면이라는 거짓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습관으로 물든 현대인들이 볼 때 신화를 가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의 가짜의식에 의해서 신화의 진실이 흐려지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는 물질적인 동기가 그 근본에 있는데 비해서 신화가 만들어진 동기는 집단적 무의식을 통한 진실이라는 차이점을 갖고있다. 

원시인들은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들은 신화 속에서 살고 있었으며 신화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신화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진짜일 뿐 아니라 진실을 담고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현대인들의 이야기에는 진실이 없다.

종교역사학자인 멀씨아 엘리아드는 그의 저서인 "신화와 현실" 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신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화는 더 이상 "이야기거리"로 치지 않는다. 신화는 실화일 뿐 아니라 신화 이전의 그 무엇을 담고있다. 진실된 신화에는 신성한 내용이 있을 뿐 아니라 유용한 면도 담고있다.

고고학계에서는 신화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면모를 발견할 뿐 아니라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 상태를 알 수 있게된다. 신화는 옛날 사람들에게 인생의 뜻을 부여하고 있었으며 인생의 가치를 발견해주고 있었다.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인생의 뜻을 부여하고 인생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것과 같이 옛날 사람들에게는 신화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엘리아드는 말하기를 인류학자들은 신화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태도도 미루어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신화는 사람들의 건망증에 대한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 중의 하나는 잊는 것이다. 시간은 사람들에게 잊음을 강요한다. 잊는다는 시간의 횡포에 대한 안전장치가 신화인 것이다. 신화에는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내용을 담아서 전달된다. 신화는 함축된 내용을 담고있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함축되어있는 신화의 내용과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형되어있는 내용을 상징과 시간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보면서 신화의 내용을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종교적인 의식에도 기억을 되살려 내는 기능이 있다. 헬라인의 신화 속에 나오는 기억을 잊은 사람이란 죽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풀리톤은,"영원으로부터의 기억을 지식"이라  불렀다. 
기억장치를 갖고있는 신화는 이를 통해서 인생의 값어치를 올려주기도 한다. 신화가 없는 민족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신화를 간직하지 않는 민족은 옛날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신화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예이다. 신화가 살아있는 이유는 신화가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으로부터 오는 상징은 잊혀지지 않는다. 인류가 갖고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마도 동산의 기억일 것이다. 에덴동산에 대한 기억과 함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다. 

기억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런데 신화에는 바로 이 기억장치가 되어있는 것이다. 인류의 기억 속에는 치유가 들어있다. 다만 그 치유가 기억 속에 있음을 모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치유사역인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종교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종교의식은 기억장치이다. 고도의 상징성을 통해서 기억장치를 갖고있는 것이 종교의식인 것이다. 즉 상징과 기억은 같이 가는 것이다. 기억에 치유의 힘이 들어있다는 말에 유의한다면, 종교의식 속에도 치유의 힘이 들어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된다. 
오늘날의 종교에서는 종교의식이 자꾸만 간소화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종교에서는 시간이 바쁜 사람들의 생활습성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종교 속에 종교의식은 없이 친교만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친교에는 상징성이 적다. 상징성이 풍부한 종교의식이 살아날 때 기억이 살아나고 더 나아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인생은  이야기로 설명이 된다"라는  말에는 진리가 들어있다. 이런 차원에서 신화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사랑에 대하여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를 아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색깔을 말할 수도 없고, 사랑의 무게에 대하여도 할 말이 없다. 사랑을 정의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사랑을 더 알기 어렵게 되거나 오히려 오해를 하게도 된다.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알게 해주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용기, 진리, 자비, 정의 등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들은 설명이 있어야 한다. 정의를 내려서는 아무 것도 전달될 것이 없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분별했고,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면서 인생의 뜻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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