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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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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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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남 작성일12-12-15 01:12 조회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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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신의학에 대하여 알아보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왜 심신의학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그 내력을 알아보면서 역사적으로는 어떤 경로를 밟아서 오늘날의 심신의학으로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본시 마음과 몸은 하나로 되어 있었다. 마음이라고 하면 몸이 따라오고, 몸이라고 하면 마음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마음과 몸이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르네 데칼트(Rene Descartes, 1596-1650)를 이원론의 원로로 친다. 철학, 수학, 생리학의 대가로 마음과 몸을 완전하게 분리시켜 놓은 장본인으로 치고 있다.

    이원론을 다른 표현으로는 카테시안주의(Cartesianism)이라고 하는데 이는 데칼트의 라틴어 이름이 카테시안이기 때문이다. 데칼트는 현대의학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의학을 과학으로 정착시킨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쳐야 하겠는데 인간의 육체(시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카톨릭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었다. 결과로 교회는 영과 혼 그리고 감정을, 과학은 육체를 엄격하게 나누어서 다루는 격이 되었다. 그 때부터 몸은 하나의 관찰의 대상이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된다는 산술식 신체관을 정립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음 차원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데칼트 자신이 마음과 몸을 완전히 구분하여서 논문을 쓴 바 있다. 그러나 데칼트는 영혼과 육체의 접촉점이 송과선이라고 기술했고, 마음은 뇌와 신경계통에 있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순수한 생각이며 몸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결론을 지은 바 있다. 데칼트 이원론의 한계점을 보인 대목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환경에 승복은 했지만, 몸과 마음이 같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영혼이 깃 들어있는 곳까지 언급하고 있다. 데칼트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다음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답습되어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대에 살고있던,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가 데칼트의 이원론에 반기를 들게된다. 그는 마음과 몸은 단순히 한 물질의 양면이라고 갈파했고 그 물질이 바로 신이라고 말했다. 그의 논조가 데칼트의 이원론을 부인했다는 데에는 뜻이 있으나 너무 지나친 결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얻지 못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데칼트의 이원론을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8세기에 들어 와서는 사람들이 이원론 자체에 대한 논의를 꺼리게 된다. 그 이유는 마음과 몸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자연히 마음과 몸을 구별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에서 이원론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19세기에 들어 와서는 마음과 뇌의 관계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가 있게된다. 대학교재에 마음과 뇌가 논의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뇌 중에서도 대뇌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으면서 결국은 대뇌란 마음의 기관이라고 결론이 나게된다. 그러나 19세기의 마음과 몸에 대한 모든 논의는 결국 데칼트의 이원론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와서는 마음과 몸에 대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있어 왔다. 마음과 몸에 대한 논의로부터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정신신체(psycho-somatic)의학이란 단어가 나오게 된다. 특히 자율신경이란 개념이 대두되고 난 후에는 스트레스와 자율신경계 사이에 오가는 과학적인 관찰이 이루어지고 또한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끼치게 됨을 알아 낸 후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게된다.

     정신신체의학의 특징은 많은 병들이 생리학적인 근거가 없이 마음으로부터 병이 시작된다고 믿는 의학이다.

     학회지도 있고 회원도 상당히 있는 정신신체 의학협회에서의 가장 큰 제목은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로부터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병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정신신체 의학에 대하여는 토론토대학의 역사학 교수로서 이 방면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에드워드 쇼터 교수가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정신신체 의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병은 없으면서 질병의 각종 증상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병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부자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늙은이들보다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걸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병들의 근저에 생물학적(biological)인 현상이 과연 있는가? 확실한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면서도 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유전적인 소질과 함께 조건 반사적인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게 된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정신 신체적인 병은 일종의 시대적이고 또한 문화적인 요소가 있다. 시대에 따라 의사들의 진단내용이 달라지는데 이에 따라 환자들도 그 증상과 병의 내용도 함께 달라지는 것이다. 의사들이 더 발달된 의학에 의한 새로운 사실에 의한 변화가 있는 것은 이해가 쉽게되지만, 이와 같은 의사들의 지식의 확대를 따라가면서, 환자들은 그들의 병 내용이 달라지면서 좀 더 복잡한 증상을 갖게 되는데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에드워드 쇼터 교수는 정신신체의 병은 일종의 시대적이고 유행에 따르는 병임을 시사하고 있고, 암시에 의해서 병이 생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알아보는데, 그 원인을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앞에 언급한 대로 시대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정신신체의학, psychosomatic medicine), 이와는 별도로 20세기 후반에 들어 와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몸의 관계에 인간의 감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감정에 따라 몸의 생리작용이 변함으로서 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해 내고 있다. 이들은 마음이란 뇌에나 심장이나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60조개나 되는 각 세포에 다 간직되어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물론 뇌에도 마음이 있는 것은 확실하고 다른 기관이나 세포와는 달리 더 세분화되어 있고, 뇌에 더 많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뇌에만 마음이 있다는 견해와는 완전히 그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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